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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뿌리

기사승인 2019.03.14  19: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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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소비자신문]뿌리

   홍 사 성

대나무를 사랑해
마당에 심었더니

사방에 뿌리 번져
온 집안이 대숲이다

이 세상
모든 번뇌가
사랑으로 생긴 병인 듯

-시 감상-

한 겨울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대숲을 보았는가? 흰색이 무색하리만큼 푸르디푸른 빛깔이 금방이라도 눈 더미를 뚫고 일어설 위엄 있는 기세이지 않던가. 어린 시절 시골집 뒤뜰에는 대숲이 무성했다. 어스름 달빛에 도깨비들의 신비한 이야기가 바스락대던 곳이다.

홍사성 시인의 시 '뿌리'는 대나무 사랑으로 시작된다.
“대나무를 사랑해/마당에 심었더니/사방에 뿌리 번져/온 집안이 대숲이다”

대나무를 사랑해서 마당에 심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사랑해서”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대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고 많은 나무 중 대나무를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나무의 시원한 멋스러움과 상징성 때문이 아닐는지.

하늘을 향해 언제나 곧고 푸르게 자라는 대나무는 선비 정신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홀로 곧지만, 곧음이 그 직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불의의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그에 맞서 긴 직선의 몸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려낼 줄 안다. 속을 텅 비운 채 부드럽게 휘어졌다 당당하게 일어서는 그 자태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그만의 독특한 기품을 풍긴다. 게다가 댓잎마저 겸손하고 다소곳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를 떠돌며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다고 전한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방랑시인의 청빈과 지조와 여유와 낭만을 상상하게 한다.

시적 화자는 2연에서 “사방에 뿌리 번져/온 집안이 대숲”이라고 근심하며, 이미 사랑하는 대나무에게서 벗어나야 할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사랑해서 가까이 두었더니 그 사랑이 온 집안, 주체할 수없이 ‘나’를 넘쳐 난다.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늘 푸르른 대나무! 그 정신과 모습은 영원히 사랑할 만한 것인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임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오랜 동안 뿌리를 내리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던 대나무가 온 집안을 점령할 만큼 번성해 버리자 “이 세상/ 모든 번뇌가/사랑으로 생긴 병인 듯” 마침내 사랑이 병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공존과 상생, 성취의 기쁨을 함께 하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많이 갖지 말아야, 집착하지 말아야, 마음을 비워야 함을 의미하는 듯하다. 세상 번뇌의 뿌리가 집착과 애착에서 생성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살짝 비춰 보여주고 있다.

사랑도 거리가 필요하다네. 비워내며 채우며, 변함없이 푸르러라. 대나무처럼.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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