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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기사승인 2019.02.12  1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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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다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치마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 계단, 여자 화장실에만 있는 기저귀 교환대, 아이의 한입에 들어가는 캡슐 세제,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왼손잡이, 손이 닿지 않는 지하철 손잡이, 깨알 같은 약봉지 글자들.

일상의 디자인이 지닌 편견을 파헤치고 ‘포용적 디자인’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다

일상의 수많은 제품과 공간의 디자인은 각종 편향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의 저자 캐스린 H. 앤서니는 미 의회에서 화장실 평등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인물이다. 그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환경을 구성하는 디자인에서 젠더, 연령, 체형 편향과 그 이면의 미스터리들을 파헤치는 작업을 해왔다. 하이힐, 넥타이, 옷 치수부터 시작해 어린이 장난감, 대중교통, 의료설비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디자인에 담긴 편견을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나아가 ‘모두를 위한 디자인’에 관한 고민과 행동을 촉구하는 그는 좀 더 공정하고 편견 없는 세상,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저자는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아동용 장난감부터 도시 환경까지 일상의 세계를 해부한다. 이 책은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알고자 하는 디자인 학도뿐 아니라, 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찾는 모든 이의 필독서다.” - 이선영,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디자인의 젠더 문제를 타개해나가는 데 앤서니의 지도적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힐러리 클린턴-

“독보적이고 도발적이다. 저자는 우리 주변의 디자인이 인간 불평등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촉진한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 조목조목 입증하고, 주목할 만한 해법들을 제시한다.” - 다이앤 지라르도,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

“기저귀 교환대 설치해주세요”…스쿼트 캠페인 나선 아빠들
“아빠도 기저귀 갈아요” 아빠들도 육아 참여하라면서…“기저귀 갈 곳이 없어요”

최근 회자되고 있는 기사들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출산 장려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 정책이 일상에서 아이 키우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길은 멀어 보인다. 여론은 ‘비용’ 쓰기에만 치중한 프로그램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환경 및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 기사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질적인 환경 설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의식과 행동이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없다면, 아빠의 육아에 관한 의식 변화를 외쳐도 결국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몫’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의식이 변화한다 해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살고 있는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통근하는 사무실은 우리 인생의 물리적 배경에 불과한 듯 보인다. 이런 사물과 공간들의 설계나 디자인에 관해 ‘안전 의식’의 관점에서는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져왔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과 정신, 생리 현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의 저자 캐스린 H. 앤서니는 이런 환경 디자인에 주목한다. 일상의 모든 제품과 장소의 ‘디자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특징짓고, 편견을 만들어내며, 일상생활의 틀을 만든다는 것을 밝혀낸다. 우리 사회의 젠더 균형, 연령 편견, 체형 편향을 조장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미디어나 사회적 고정관념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사 입는 옷의 치수표와 매장 구조는 남녀 양성 모두의 외모와 신체 치수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고 강화한다. 학교 책상 모양과 각종 비품은 왼손잡이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 여자 화장실에만 있는 기저귀 교환대나, 차가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는 교외 마을 구조 등은 육아와 가사를 엄마의 몫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이렇듯 우리들 대부분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디자인들은 젠더, 연령, 체형, 계층 등에 관한 편견을 교묘하게 조장하고, 인간 불평등을 지속한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의류와 제품, 건물 설계의 개발과 생산에는 생산자의 편향이 개입한다.

이런 편향들은 단순히 사용 불편을 겪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심리, 사회, 문화, 세대 간의 간극을 넓히고, 특정 젠더와 연령, 체형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한다. 문제는 이런 편향적인 디자인 중 실패한 디자인으로 판명 난 것들도 있지만, 표준형으로 자리매김한 것들도 많다는 것이다.

잘못된 디자인의 폐해는 이뿐만 아니다. 이 디자인들은 사용자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유행에 맞추어 높고 거대해진 침대 매트리스는 노약자에게 침실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만든다.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린이 옷장과 TV는 툭하면 넘어지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캡슐 세제는 그대로 아이 입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미국 평균 체형의 남성 운전자에게 맞춰 디자인된 자동차는 여성이나 평균 신장 이하인 남성들의 자동차 사고를 유발한다.

이런 안전사고는 일견 안전 불감증에서 나온 듯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사용 주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단골 피해자는 주로 평균이 아닌 사람들, 즉 평균보다 키가 작거나 뚱뚱한 성인, 여성, 어린이나 노약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들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더 많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캐스린 H. 앤서니는 우리를 둘러싼 온갖 것들에 어떤 식의 편향이 반영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고 안전을 위협하는지를 폭로한다. 이를 통해 일상의 디자인에 관한 문제의식을 촉구한다. 나아가 우리가 디자인 주도권을 확립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 책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소비자로 거듭나는 것을 넘어,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관점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캐스린 H. 앤서니/옮긴이 이재경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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